기독교인들이 범하기 쉬운 잘못된 성서해석.

1. 짝찾기식 해석.
가끔 기독교계 사이트에서 웹서핑을 하다보면, 기독교인들의 잘못된 성서해석을 발견하게 된다. 그중 하나가 짝찾기식 해석 그러니까 이 구절의 뜻은 저 구절에 나와 있고, 저 구절의 뜻은 이 구절에 나와 있다는 해석이다. 이 해석은 성서말씀의 교회사적 배경과 전체문장 그리고 교리지식를 무시하고, 일부문장만으로 해석하는, 잘못된 해석방법이다.
그럼에도 자신있게 짝찾기식 해석을 하는 이들이 있다.
실례로 전에 어느 기독교계 포털사이트에 어떤 회원이 요한복음서 3장 6절에 대해 물어보셔서, 기독교 교리와 한국 신약성서학계의 권위자 김득중 선생의 <복음서신학>(컨콜디아사)를 논거로 요한복음서 3장 6절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은혜가 세례를 통해 전달된다는 뜻임을 설명한 문장이라고 말씀드렸다. 더 자세히 말한다면 요한교회는 성령을 강조하는 교회였기 때문에, 자칫 세례, 성찬례등의 성사(Sacrament=성례전)을 소홀히 할 수 있기 때문에 성령과 물 즉, 세례를 통해 새로나야 함을 말한 것임을 설명다. 물론 내 주관적인 주장을 말한 게 아니라, 기독교 교리와 신약성서학에 근거한 객관적인 해석을 설명한 것이다.
그랬더니 어느 회원이 사람의 생각을 말한다며 내가 마치 잘못된 해석을 한 것처럼 비난하더니, 요한복음서 3장 6절의 뜻은 이사야서와 신명기 어느 구절들에 나와 있다며 말씀으로 새로나야 한다는 뜻이라고 자신있게 짝찾기식 해석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회원의 해석은 분명히 잘못된 해석이다. 우선 그 회원이 언급한 이사야서와 신명기 어느 구절들은 전체문장을 보면서 해석하면 알겠지만 회개하고 야훼 말씀을 들으라는 뜻의 구절들이지, 요한복음서 3장 6절의 뜻이 나온 구절들이 아니다.또한 그 회원의 주장과는 달리, 요한복음서 3장 6절은 말씀으로 새로나라는 뜻이 아니라, 세례를 통해 새로나야 한다는 뜻이다. 왜냐면 신약성서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세례를 통해 죄의 용서와 새로남의 은혜를 받아야 하고(사도행전 2:38,로마서 6:3-5,갈라디아서 3:27) 초대교회에서는 성찬례와 더불어 세례성사가 보편적으로 집전되어, 요한복음서 저자로서는 자기교회 교인들에게 세례성사에 대해 가르칠 필요를 느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그 회원은 왜 이 구절의 뜻은 저 구절에 나와 있다는 짝찾기식 해석을 자신있게 말한 것일까?
아마 두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첫째 대다수 기독교인들이 성서말씀을 올바르게 해석하려면 전체 문장을 해석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사실조차 모르기 때문이고(영남신대 오택현 교수님의 분석), 둘째 기독교교리 즉, 조직신학을 비롯한 신학을 무가치한 것으로 오해하여 배우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실례로 짝찾기식 해석을 하는 자들은 거의 대부분 교리와 신학에 근거한 바른 해석을 하기보다는, 전체문장을 읽어보면 전혀 뜻이 다른 성서말씀들을 억지로 연관지어 해석한 주관적 해석을 자신있게 주장하거나, 신학비전공자인 나도 아는 기본적인 신학지식조차 모르는 자들이다.

by 책벌레 | 2008/07/09 01:45 | 성서이야기 | 트랙백

트랙백 주소 : http://logosblf.egloos.com/tb/1969304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


Cand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