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들이 범하기 쉬운 잘못된 성서해석.

1. 짝찾기식 해석.
가끔 기독교계 사이트에서 웹서핑을 하다보면, 기독교인들의 잘못된 성서해석을 발견하게 된다. 그중 하나가 짝찾기식 해석 그러니까 이 구절의 뜻은 저 구절에 나와 있고, 저 구절의 뜻은 이 구절에 나와 있다는 해석이다. 이 해석은 성서말씀의 교회사적 배경과 전체문장 그리고 교리지식를 무시하고, 일부문장만으로 해석하는, 잘못된 해석방법이다.
그럼에도 자신있게 짝찾기식 해석을 하는 이들이 있다.
실례로 전에 어느 기독교계 포털사이트에 어떤 회원이 요한복음서 3장 6절에 대해 물어보셔서, 기독교 교리와 한국 신약성서학계의 권위자 김득중 선생의 <복음서신학>(컨콜디아사)를 논거로 요한복음서 3장 6절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은혜가 세례를 통해 전달된다는 뜻임을 설명한 문장이라고 말씀드렸다. 더 자세히 말한다면 요한교회는 성령을 강조하는 교회였기 때문에, 자칫 세례, 성찬례등의 성사(Sacrament=성례전)을 소홀히 할 수 있기 때문에 성령과 물 즉, 세례를 통해 새로나야 함을 말한 것임을 설명다. 물론 내 주관적인 주장을 말한 게 아니라, 기독교 교리와 신약성서학에 근거한 객관적인 해석을 설명한 것이다.
그랬더니 어느 회원이 사람의 생각을 말한다며 내가 마치 잘못된 해석을 한 것처럼 비난하더니, 요한복음서 3장 6절의 뜻은 이사야서와 신명기 어느 구절들에 나와 있다며 말씀으로 새로나야 한다는 뜻이라고 자신있게 짝찾기식 해석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회원의 해석은 분명히 잘못된 해석이다. 우선 그 회원이 언급한 이사야서와 신명기 어느 구절들은 전체문장을 보면서 해석하면 알겠지만 회개하고 야훼 말씀을 들으라는 뜻의 구절들이지, 요한복음서 3장 6절의 뜻이 나온 구절들이 아니다.또한 그 회원의 주장과는 달리, 요한복음서 3장 6절은 말씀으로 새로나라는 뜻이 아니라, 세례를 통해 새로나야 한다는 뜻이다. 왜냐면 신약성서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세례를 통해 죄의 용서와 새로남의 은혜를 받아야 하고(사도행전 2:38,로마서 6:3-5,갈라디아서 3:27) 초대교회에서는 성찬례와 더불어 세례성사가 보편적으로 집전되어, 요한복음서 저자로서는 자기교회 교인들에게 세례성사에 대해 가르칠 필요를 느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그 회원은 왜 이 구절의 뜻은 저 구절에 나와 있다는 짝찾기식 해석을 자신있게 말한 것일까?
아마 두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첫째 대다수 기독교인들이 성서말씀을 올바르게 해석하려면 전체 문장을 해석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사실조차 모르기 때문이고(영남신대 오택현 교수님의 분석), 둘째 기독교교리 즉, 조직신학을 비롯한 신학을 무가치한 것으로 오해하여 배우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실례로 짝찾기식 해석을 하는 자들은 거의 대부분 교리와 신학에 근거한 바른 해석을 하기보다는, 전체문장을 읽어보면 전혀 뜻이 다른 성서말씀들을 억지로 연관지어 해석한 주관적 해석을 자신있게 주장하거나, 신학비전공자인 나도 아는 기본적인 신학지식조차 모르는 자들이다.

by 책벌레 | 2008/07/09 01:45 | 성서이야기 | 트랙백

주일학교 교사로 사목하면서..

필자 성공회 신명은 바우로이다. 짐작하겠지만 성 바울로에서 따온 이름인데, 문제는 필자가 정말 본받아야 할 성 바울로의 좋은 점은 전혀 안 닮았고, 본받지 말아야 할 나쁜 점만 닮았다는 것이다. 무슨 일이든지 내 뜻대로 되어야만 만족하고, 논쟁이 붙으면 다른 사람을 설복시켜야 직성이 풀리는 고집센 성격때문에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고지식해서 다른 사람의 잘못을 참아주거나 용납해주지 못하며, 매킨토시 학원에서 편집디자인 고급과정을 공부할때 선생님이 "그렇게까지 꼼꼼하게 할 필요는 없어."라고 하실 정도로 원리원칙을 고집할때가 있다. 더구나 성격이 세심하고 연약해서 다른 사람의 말 특히 직설적인 말에 상처받고, 속으로 울기도 한다. 그럼에도 필자가 1년넘게 주일학교 교사로 평신도 사목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동역자들덕분이다. 정이 많고 들어주기를 잘해서 남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스데파노,  날 많이 챙겨주고 감싸주는 좋은 동역자요, 아는게 많고 판단력이 정확한 좋은 충고자인 요한, 대학교 1학년이라 학교생활적응하기도 힘들텐데 주일마다 성실하게 섬겨주는 카타리나 선생님 덕분이다.아마도 그들이 없다면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by 책벌레 | 2008/07/08 02:41 | 주일학교 이약.. | 트랙백

이명박 장로, 당신이 정말 종교인이라면 종교인들의 가르침을 경청하시오.

뉴스링크

이명박정권 위험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촛불시위로 반대한 국민들을 국가폭력으로 짓밞더니 이제는 이명박 정권의 악정을 비판한 성직자들 그러니까 개신교 목사, 성공회 신부, 가톨릭 신부, 불교승려들을 형사처벌한단다..정부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억누르는 대한민국 과연 민주주의 국가인가? 아니면 독재국가인가? 그 정체성이 의심스럽다. 이명박 장로, 당신이 정말 서울시를 하나님에게 바칠만큼 독실한 종교인이라면, 불교승려들을 청와대에 초청할정도로 열린 종교인이라면 성직자들이 시청광장에서 전한 하느님과 부처님 말씀에 복종하시오. 그리고 국민을 국가폭력으로 짓밞은 이명박정권에 대해 예언자적 목소리를 낸 교회 성직자들, 결코 꺽이지 마십시오. 우리 기독교인들이 복종해야 할 분은 이명박 총통이 아니라, 하느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by 책벌레 | 2008/07/07 22:29 | 세상읽기 그리고 개인일기 | 트랙백

가톨릭과 KNCC소속교단의 사회참여 단상..

가톨릭,kncc소속교단(성공회, 정교회, 개신교)에서 시국미사와 시국기도회를 열어 민중들의 편을 든 것은 민중들이 선하거나의로워서가 아니라,이명박정권의 국가폭력과 친 자본가 정책,조중동의 왜곡보도가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기 때문 그리고 하느님은 약자를편드시는 분(기독교사상 2006년 4월호, 아모스가 꿈꾸는 한국교회, 우택주, 대한기독교서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뿐입니다..

by 책벌레 | 2008/07/05 23:25 | 세상읽기 그리고 개인일기 | 트랙백

기독교시국기도회에 참여한 성공회 신부님..^^

성총을 가득히 받으신 대구교회여, 하례하나이다.
주께서 한 가지로 계시오니, 모든 교회 중에 복을 받으시며
대구교회에게서 나신 성요한 신부님도 유복하도소이다.
하느님의 예언자 되신 성요한 신부님이여,
이명박 정권의 국가폭력과 친자본가 정책들로
정의(正義)와 공의(公義)가 사라진 우리 대한민국에 정의와 공의가 물과 강물처럼
흐르도록(아모스 5:24) 기구하옵소서. 아멘.

by 책벌레 | 2008/07/05 17:25 | 성공회 이야기 | 트랙백

(발췌)이명박 정부의 세 가지 논리, 남탓론, 괴담론, 선동론..

미국 쇠고기의 전면수입과 생활정치의 본격적 전개

진보평론  제36호
홍성태(상지대학교/ 사회학)

2008년 4월 18일 이명박 정부는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초로 미국 쇠고기의 전면수입을 결정했다. 다음 날인 4월 19일 이명박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을 자기가 운전하는 골프차에 태우고 신나게 놀았다. 두 사람은 친구 사이를 넘어서 거의 애인 사이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미국 쇠고기의 전면수입은 이명박이 부시에게 바친 최고의 선물이며, 한미회담은 일방적인 ‘조공외교’라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대다수 국민이 이 비판에 동의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결정한 것은 단순한 미국 쇠고기의 수입이 아니라 ‘전면수입’이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첫째, 광우병 위험이 큰 30개월 이상된 소를 도축해서 생산한 쇠고기를 수입하는 것이다. 30개월 이상된 소는 광우병의 원인물질인 변형 프리온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불과 0.01g의 변형 프리온만 섭취하더라도 광우병에 걸려서 죽을 수 있다. 30개월 이상된 소를 도축해서 생산한 쇠고기는 가능한 한 먹지 않는 것이 좋다. 미국 소는 더욱 더 그렇다. 미국에서는 1억 마리 정도의 소를 기르고 있고, 매년 4,000만 마리 정도를 도축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 불과 0.05% 정도만 광우병 검사를 한다. 미국은 이미 광우병이 발생했던 나라이지만 그 예방책은 전혀 믿을 수 없는 실정이다.
둘째, 광우병 위험이 큰 부위를 사실상 모두 수입하게 되었다. 기존에는 ‘30개월 미만 살코기’로 미국 쇠고기의 수입을 규제했다. 월령과 부위의 규제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4월 18일의 ‘협상’에 따라 이제 이 규제는 완전히 무너졌다. ‘30개월 미만 소’는 광우병 위험이 큰 편도와 소장 끝을 제외한 모든 부위를 수입할 수 있으며, ‘30개월 이상 소’는 광우병 우려가 큰 7개 특정위험물질(SRM) 부위(편도, 소장 끝, 뇌, 눈, 머리뼈, 등뼈, 등뼈 속 신경)를 제거하고 수입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는 국제수역사무국(OIE)의 권고지침에 따른 것이라고 합리화하지만 일본 정부는 말할 것도 없고 미국 정부조차 OIE의 기준을 신뢰하지 않고 있다.
미국은 소 이력제를 실시하지 않기 때문에 30개월 미만 소라고 하는 것도 사실 30개월 이상 소일 수 있다. 미국 축산업자가 그렇다고 하면 그냥 그런 줄 알아야 한다. 결국 미국 축산업자의 ‘양심’에 우리의 생명을 맡겨야 하는 것이다. 이번 ‘협상’의 핵심은 30개월 이상 소를 도축해서 생산한 쇠고기의 수입이다. 미국 축산업계는 이것을 관철하기 위해 오래 전부터 강력한 로비를 펼쳐왔다. 사육되는 전체 소의 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의 30개월 이상 소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24개월 미만의 쇠고기만 소비된다. 송아지를 두 번 이상 생산한 30개월 이상 소는 폐기해야 하는데, 만일 고기로 팔 수 있다면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다. 물론 막대한 폐기비용도 들지 않는다. 미국 축산업계는 소의 모든 부위를 고루 잘 먹는 한국인에게 큰 기대를 걸었다. 미국 축산업계는 한국을 미국 축산업의 발판이자 ‘폐기물 처리장’으로 선택했다.
광우병 위험이 큰 미국 쇠고기의 전면수입이 결정되자 국민들의 우려가 커지기 시작했다. 문화방송 ‘PD수첩’의 광우병 보도는 이 우려에 불을 붙였다. 국민들은 광우병이 얼마나 무서운 병인가를 생생히 확인할 수 있었다. 곧 이어 인터넷을 통해 활발히 논의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부는 계속 국민들의 우려를 무시하고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강변을 일삼았다. 급기야 10대를 중심으로 촛불을 들고 거리에 모여 우리의 뜻을 밝히고 재협상을 촉구하자는 논의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5월 2일, 이명박 정부의 광우병 위험 미국 쇠고기의 전면수입을 규탄하고 재협상을 촉구하는 첫 번째 ‘촛불문화제’가 서울의 청계광장에서 열렸다. 이로써 건강과 생명의 위협에 맞서는 ‘생활정치’가 본격적으로 펼쳐지게 되었다.
왜 10대들이 나섰는가? 학교에서 급식을 하고 있는 10대들은 가장 커다란 잠재적 피해자이다. 학교 급식은 여러 문제를 안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형편없는 식자재를 쓰고 있다는 것이다. 업자들이 비용을 줄이고 이익을 늘리기 위해 가능한 값싼 식자재로 음식을 만들어 공급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된다면 업자들은 당연히 이것을 쓰려고 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말대로 ‘값싸고 질 좋은’ 쇠고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값싸고 질 좋은’ 쇠고기는 심각한 광우병의 위험을 안고 있다. 그리고 이 위험에 대해 미국 정부는 미국 축산업계를 위해 강력히 대응하지 않고 있다. 미국 쇠고기의 전면수입은 광우병의 발병과 확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10대들은 이런 문제를 인터넷을 통해 잘 알게 되었다. 이미 여러 문제가 발생했지만 미국 쇠고기의 전면수입은 바로 자신들의 건강과 생명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다. 아니, 광우병은 치사율 100%의 병이므로 미국 쇠고기의 전면수입은 생명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다. 이런 위협에 대응하는 것은 그야말로 자연스러운 것이다. 10대들은 인터넷을 통한 토론에 익숙하고, 또 2002년 겨울부터 시작된 촛불집회에도 익숙하다. 자신들의 의견을 정부가 무시할 뿐만 아니라 조중동문-매경-한경 등의 보수언론들이 왜곡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이런 상황을 두루 고려한 결과 10대들은 촛불을 들고 도심에 모여서 자신들의 뜻을 세상에 밝히게 되었다.
이명박 정부는 아닌 게 아니라 공부에 전념해야 할 10대들마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서게 했다. 사실 10대들은 공부에만 전념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 여행, 놀이도 즐기고, 여러 봉사활동도 활발히 벌여야 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10대들을 오로지 입시기계로 만드는 정책을 전례 없이 강화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나아가 이명박 정부는 아예 10대들의 생명까지 위협하고 나선 것이다. 이렇듯 절박한 상황에 맞선 10대들의 촛불집회에 대해 이명박 정부는 어이없게도 세 가지 주장을 제시해서 자신의 문제를 다시한번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남탓론, 괴담론, 선동론이 그것이다.
‘남탓론’은 늘 하던 대로 노무현 정부를 탓하는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은 30개월 미만의 원칙을 고수했다. 세계 최초의 미국 쇠고기 전면수입은 어디까지나 이명박 대통령의 ‘작품’이다. 이 잘못된 정책이 결국 실행된다면, 머지않아 광우병 환자가 발생할 것이다. 그 책임은 어디까지나 이명박 대통령에게 있다. ‘괴담론’은 광우병 위험에 관한 여러 설명들이 혼란을 부추기기 위해 고안된 괴담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소비자가 사 먹지 않으면 된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말이나, 심지어 광우병 걸린 소도 안전하다는 심재철 의원의 말이야말로 괴담이다. 과학을 괴담으로 매도하는 것은 자신의 무지와 무능을 드러내 보여줄 뿐이다. 최악의 것은 ‘선동론’이다. 이것은 ‘유사 색깔론’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명박 대통령을 반대하는 세력이 정치적 의도를 갖고 미국 쇠고기의 위험을 유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10대들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거리로 나섰다. 그들의 절박한 주장을 이렇게 한심한 주장으로 무시하고 잘못을 바로잡으려 하지 않자, 10대들은 결국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반대의 뜻을 강력히 천명하게 되었다. ‘생활정치’에 대한 무지가 문제를 더욱 키운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경찰들을 동원해서 10대들을 감시하고 협박하기 시작했다. 교육청은 교사들을 동원해서 같은 짓을 벌였다. 전교조를 비롯해서 시민단체에 대한 비난과 매도도 이어졌다. 그러나 이재오의 말대로 구름이 짙게 드리웠다고 해서 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재오야말로 구름 위의 해를 생각하며 반성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의 반민주적 행태에도 불구하고 촛불은 꺼지지 않았다. 오히려 학부모들이 동참하며 10대의 촛불은 곧 시민의 촛불이 되었다. 그것은 거리의 어둠을 밝히는 불빛이었을 뿐만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이 드리운 시대의 어둠을 밝히는 불빛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결국 ‘대국민 담화’를 발표해서 자기 탓이라며 ‘반성’의 말을 했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허울일 뿐이었다. 그는 ‘반성’한다면서 여전히 비판을 ‘괴담’이라고 부르고 미국 쇠고기의 전면수입을 실행하겠다고 했다.
대다수 국민들이 미국 쇠고기의 전면수입에 대해 반대하며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다. 재협상이 불가능하다는 이명박 정부의 해명은 거짓말이라는 사실이 이미 드러났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기어이 ‘광우병 정부’가 되고자 하고 있다. 국민들의 반대가 거세지자 재계, 보수언론, 그리고 뉴라이트가 이명박 대통령을 적극 옹호하고 나섰다. 이를테면 ‘광우병 위험 강요 연대’가 형성된 것이다. ‘고소영’ 세력 또는 ‘강부자’ 세력의 문제가 이렇듯 ‘생활정치’의 영역에서 다시금 확인되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을 광우병 위험에 전면적으로 노출시킨 대통령이다. 여기서 이명박 대통령이 역시 대다수 국민들이 반대하고 있는 운하건설계획을 강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을 광우병 위험으로 몰아넣고 국토를 대파괴 위험으로 몰아넣고 있다.
10대들의 촛불은 건강과 생명의 보호를 추구하는 ‘생활정치’의 촛불이었다. 거대한 위험의 생산을 통해 풍요의 생산이 이루어지는 위험사회의 현실 속에서 곧 대다수 시민이 ‘생활정치’의 촛불을 함께 들게 되었다. 한국은 서구보다 훨씬 더 위험한 위험사회, 곧 커다란 사고가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사고사회’의 성격을 갖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 문제를 더욱 더 악화시키고 있기 때문에 ‘생활정치’는 더욱 더 활발히 펼쳐지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개인의 이익을 무엇보다 중시한다는 점에서 보수적이지만, 그것을 위해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쪽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진보적이다. 우리는 기존의 정치적 분리선을 뛰어넘어서 현대 문명의 한계를 겨냥하는 ‘생활정치’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여기에 진정한 선진화와 진보의 싹이 있다.

by 책벌레 | 2008/07/05 16:18 | 세상읽기 그리고 개인일기 | 트랙백

기독교 시국기도회 순서

국민존엄 선언과 평화집회 보장을 위한 기독교 시국기도회
_2008년 7월 3일(목) 오후 7시
_서울광장
_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_광우병 기독교대책회의

기도회 순서
* 시편 85편, 공동체 탄원시를 토대로 구성했습니다.
* 2인이 인도합니다. 1인은 성구를 읽습니다. 또 다른 1인은 간략한 안내를 합니다.
* 순서담당    인도 2인(L1, L2)
        참회기도 1인(C1)
        기도 3인(조정 가능, P1, 2, 3)
        성서 4인(조정 가능, R 1, 2, 3, 4)
        설교 1인
        축도 1인
   - 순서담당하시는 분은 숫자 조절이 가능합니다.(기도문 함께 조정)
행렬
* 광장 뒤쪽에서 강단을 향해 나아온다. 십자가가 앞서고 행렬은 강단 주변에 반원 형태로 선다.
초대
인  도 2: 국민 여러분, 대한민국의 미래와 사람 하나하나에 대한 애정으로 지난 50여 일 동안 광장을 지켜 오신 여러분들께 진심어린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드립니다. 저희는 한국의 개신교 목회자들입니다. 지난 수 십 년 민족사의 어려운 현장에 꼭 참여하고 힘을 보탠 저희들이었지만, 저희들의 잘못으로 인하여 참된 그리스도의 음성을 전하는 일을 일부 보수적이고 호전적인 이들에게 넘겨주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반민주적이며 반역사적인 집단으로 인식되고야 말았습니다. 언제라도 여러분들과 함께 하기 위하여 이 광장에 오랜 동안 함께 참가하였지만, 우리의 어리석음과 잘못으로 인한 부끄러움은 그 일마저도 막고야 말았습니다. 저희는 지난 6월 30일 이 광장을 둘러싼 저 커다란 차벽을 뚫고 시국미사를 강행하신 신부님들을 향하여 말로 전할 수 없는 마음을 이렇게나마 전해드립니다. (인사)
너무 늦었다는 핀잔도 하시겠지만, 인간의 존엄과 진리의 빛을 드높이기 위하여 이제 정갈한 옷으로 갈아입고 여러분들의 광장 한 가운데로 들어섰습니다. 본래부터 이 광장에 넘쳤던 젊음과 창의, 화합과 사랑의 기운이 다시금 이 광장을 넘어 온 겨레의 산하로 흘러가고, 저 대양과 창공조차 넘어서는 평화의 울림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제 함께 기도를 올리고자 합니다. 신과 불신을 막론하고 모든 이들을 보살피시는 우리 하나님께 나아갑시다.

울림, 찬양
목회기도
인  도 2: 주님이여, 당신 땅을 어여삐 여기시어 귀양살이 야곱을 돌아오게 하시고, 당신 백성의 죄를 용서해 주시며 저희 모든 허물을 덮어 주셨습니다.
인  도 2: 우리 모두를 위해 기도합니다.

찬양
인  도 2: 하나님, 우리가 주님께 찬미를 드립니다.
오랜 세월 이 나라와 민족을 지켜주셨습니다. 인간이 사는 모든 곳에 분쟁과 다툼이 없겠습니까만, 주께서 주신 슬기로 우리는 우리나라의 역사를 꿋꿋하게 지켜왔습니다. 역사의 고비마다 새 힘을 주시었으며, 이름 없는 평범한 이들이 자신의 가족과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하여 분연히 일어서게 하셨습니다. 대한민국의 2008년, 우리는 가늘지만 영롱한 빛들을 보았습니다. 촛불소녀, 소년들이 밝힌 빛은 아름답지만 너무나도 강하게 우리의 심장으로 파고들었습니다. 자신의 인생, 자신의 가족, 자신의 영역만 지켜오던 이들의 속에 움튼 이기심을 모조리 태워버렸습니다.
인  도 1: 당신의 격분을 말끔히 거두시고 타오르는 진노를 잊으셨사옵니다.
인  도 2: 하나님, 이 빛이 참됨을 믿습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세상을 아름답게 여시고 온 누리를 밝히신 그 빛, 인간의 죄로 인하여 잃어버렸던 빛. 하지만 예수께서 다시금 찾아주신 그 빛이 지금 우리 가운데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인간존엄을 선언하는 빛이며 땅에 발붙이고 사는 평범한 이들의 외침인 이 빛이 주님께로부터 와서 우리를 밝히시니 감사드립니다.
찬송  _여기 오소서

참회기도
인  도 1: 우리 구원의 하나님, 노여움을 푸시고 우리를 되돌아가게 하소서. 영원히 우리에게 노하시며 대대로 우리에게 노여움을 품으시렵니까?
인  도 2: 참회의 기도를 다함께 드립니다.
(다함께)
하나님, 혹자는 우리를 향해 진보적인 목회자들이라고 합니다. 혹자는 종교인들은 모두 보수적이라 합니다. 모두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그저 작고 미약하기 그지없는 인간일 뿐입니다. 초야에 묻혀 사는 한 가정의 일원이며, 한 교회 공동체의 일군일 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속마음을 들켜버린 수줍음 많은 아이처럼 순수한 눈빛을 가진 해 맑은 미소이고 싶습니다.
주님, 우리는 압니다. 우리는 늘 실수하고 잘못하고 상처를 받기도, 주기도 하는 허물 많은 존재입니다.
하지만 주님, 우리는 이것도 알고 있습니다. 정의를 짓밟는 악행 앞에 침묵하지 말아야하며, 평화를 위해서는 자신의 등이라도 내어 다리가 되어야 하는 것이 주님의 종들이 걸어야 하는 길입니다.
주님, 우리를 용서하십시오.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잘 알면서도 존재의 무게에 합당하게 행동하지 못한 저희 허물을 씻겨주십시오. 오랜 세월 침묵한 죄, 하나님의 정의를 우리의 무능함으로 가려버린 죄, 잘못한 것을 잘못했다고 크게 소리쳐 밝히지 못한 죄, 더 많은 죄들, 죄들 …. 주님, 용서하여 주십시오. 우리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연주, 침묵기도
인  도 1: 우리를 되살릴 분 당신이 아니옵니까? 이에 당신 백성이 당신 안에서 어찌 아니 기쁘오리까?
기도 1
인  도 2: 진리의 승리를 위해 기도합니다.
인  도 1: 주님이시여여! 도와주소서. 믿음 깊은 자 한 사람도 없사옵니다. 믿을 만한 사람 하나 없사옵니다. 입만 열면 남 속이는 말이요, 입술을 재게 놀려 간사한 말을 하고 속 다르고 겉 다른 엉큼한 생각뿐입니다. (시편 12:1~2)
기도자 1:
진리의 승리를 위해 기도합니다.
혼돈과 깊음 가운데 빠진 세상에 빛이 있으라. 말씀하시며 세상을 창조하신 진리의 하나님! 거짓과 혼돈 가운데 빠진 이 시대에 참된 지식, 참된 생명, 참된 인생의 길을 비춰 주시옵소서. 사람들은 ‘경제’ ‘경제’를 외치며 대통령을 뽑았고 그 속에 자신의 숨은 욕망을 감추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난 시기를 잃어버린 10년이라고 강박하며 마치 진리의 시대가 열린 양 날뛰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처음부터 거짓과 위선으로 시작된 시대였습니다. 한반도대운하 추진 속에 파괴되는 산천과 생명들의 외침은 감추어졌습니다. 뉴타운의 번쩍이는 네온 불빛 속에 가난한 서민들의 한스런 호소는 짓밟혔습니다.미국산 쇠고기가 추가협상으로 안전해졌다고 강박하는 협상대표의 거짓말 속에 우리 국가의 주권과 국민의 생명은 벼랑으로 내몰렸습니다. 이 정부는 비록 그 기간을 짧았지만  출발부터 헛된 욕망을 부추기는 거짓으로 시작되었고, 머리 숙여 국민 앞에 사죄한다면서도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 거짓과 기만으로 점철되어 왔으며, 국민에게 배우겠다는 말은 했지만 실제로는 국민을 폭행하고 믿음을 배반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정말 이런 정부 아래서 하루라도 산다는 것이 지옥 같은 일이요, 견딜 수 없는 고통입니다.
하나님 그런 어둠 속에 우리 아이들이 촛불을 들었습니다. 어른인 우리들이 말을 못하고 빛을 밝히지 못하자 돌들이 소리 지르는 것처럼 우리 중고등학생 우리 아이들이 촛불을 들었습니다. 부끄러운 우리 어른들은 그 아이들을 뒤이어 촛불을 들면서 진리의 빛이 세상에 퍼지기를 다시 한 번 기도합니다. 하나님 거짓이 진실을 감출 수 없고 거짓이 진리를 이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말씀 믿고 의지하며 우리의 선한 싸움을 계속 하려합니다. 진리의 승리를 지켜주시고 우리와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기도 2
인  도 2: 국민주권 선언을 위한 기도입니다.
인  도 1: 주님이시여! 간사한 모든 입술 막아 주시고 제 자랑하는 모든 혀를 끊어 주소서. 저들은 말합니다. "혀는 우리의 자랑, 제 혀로 말하는데 누가 막으랴?" "없어서 짓밟히고, 가난해서 신음하니 나 당장 일어서리라. 그들이 갈망하는 구원을 베풀리라." 주님의 말씀 이러하시니 주님의 말씀이야 진실 된 말씀,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녹여 거른 순은입니다. (시 12:3~6)

기  도 2:
국민주권 선언을 위해 기도합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하나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헌법 제1조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국민들의 위대한 외침과 절절한 요구를 이명박 대통령은 외면하고, 명박산성 넘어 자기 굴속에 처박힌 채 한반도대운하와 747경제성장이라는 명박복음을 읊조리며 주권자 국민을 폭행하고 참된 민주헌정질서를 유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국민이 국가의 주인 아닙니까?
하나님. 국민이 국가의 주인 아닙니까?
하나님. 국민이 국가의 주인 아닙니까?
내가 먹을 음식이 안전한가를 검증할 권리는 우리 국민들에게 있습니다. 그 음식을 수출하는 나라가 믿을 만한가? 아닌가를 판단할 권리는 우리 국민들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국민들은 자기 생명을 지키기 위한 검역체계를 세우고 검역주권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전면재협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이 요구가 뭐라고 그토록 거부하고 있는지 온 국민들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협상한번 잘못하면 열 번 백번이고 다시 하는 것이 국가관계요, 세계국가들의 일상적일 일인데 왜 우리 국민들의 종인 정부는 이토록 거부하고 폭력으로 응답을 하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국민들은 자신이 나라의 진정한 주인이라는 사실을 촛불을 통해 밝히고 있습니다. 한미동맹 뿐만 아니라 그 어떤 국제관계도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라는 사실 위에 군림할 수 없으며 자신의 뜻과 역사의 진로는 스스로 결정한다는 것을 이번 촛불을 통해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이 백성들의 절절한 호소를 들어주시옵소서.
우리가 세운 촛불교회에는 이런 이들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노숙자들, 부상당한 자들, 상심한자들, 약한 자들, 심지어는 교회를 욕하는 사람까지 몰려들어 자신이 주인 된 하나님 나라를 갈구하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이들을 어찌하시렵니까?
나라의 주인인 이 나라 백성들이 역사의 주인인 하나님께 드리는 애타는 호소를 들어주시옵소서. 그들이 꼭 쥔 촛불이 반드시 승리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낙심하지 말고 지치지 말고 분열되지 말고 촛불을 쥔 손 더 굳건히 쥐고 주인 된 자신의 권리를 기어이 찾아내도록 이들을 지켜주시옵소서. 예수님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기도 3
인  도 2: 모든 이들의 평화를 청원하는 기도를 드립시다.
인  도 1: 주님이시여! 우리를 지켜 주소서. 이 더러운 세상에서 우리를 끝까지 보살피소서. 주위에는 악인들이 우글거립니다. 더러운 자들이 판을 칩니다. (시12:7, 8)
기  도 3:
모든 이들의 평화를 청원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우리 믿음의 선배는 우리에게 평화의 도구가 되어달라고 간구하였습니다.
평화의 도구, 그것은 이 시대에 가장 간절한 기도입니다.
폭력이 난무하고, 미움이 하늘을 찌르며, 비방과 욕설이 교차하는 순간에 평화의 영은 안타까이 바라보고 계십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우리 신앙의 동지가 평화를 갈구하며 도로 위에 누울 때 폭력을 지시하는 무리에 의해 평화의 영은 쫓김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가 드리는 평화의 기도는 산산조각이 나며 그 자리에 미움과 증오가 들어차고 말았습니다.
주님. 이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이니 참으로 기가 막히고 말문이 막혀 기도조차 나오지 않습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주님. 우리 하나님 백성들이 이땅의 백성들을 위해 평화의 기도를 드립니다. 그들에게 평화를 내려주소서. 그들의 마음에, 그들의 가정에, 그들의 손과 발에, 그들의 입술에, 그들의 행진 속에 평화의 영이 함께 하시옵소서.
손에 쥔 방패가 내려져 장애인, 노약자, 어린아이를 부축하는 안내의 손길이 되게 하시고, 옷 속에 감춰진 주먹이 지친 나그네의 땀 닦아주는 손길이 되게 하시고, 높이 솟구친 물대포에서는 평화를 경축하는 축포가 하늘 높이 발사되게 하시고 집회해산을 통고하는 경찰차의 확성기에서 평화의 성가가 울려 퍼지게 하소서.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주님. 이 땅에는 평화를 깨뜨리는 갈등의 선전자들이 있습니다. 역사에 남을 그 이름 조중동입니다. 그들은 공권력의 폭력을 외면하고, 평화시위를 폭력시위로 왜곡하며, 거짓된 쇠고기협상을 진실인양 가리고 기만하여 국민들의 눈을 흐리고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의 촛불을 그들의 거짓을 깨뜨리고 하나님의 진리와 참된 평화를 전하는 도구가 되게 하소서. 주님. 평화를 갈구하는 국민들과 시민들, 노동자들과 농민들의 염원이 주의 능력으로 이루어지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찬송, 성가대
인  도 2: 주님이시여, 당신의 사랑을 보여 주소서. 당신의 구원을 우리에게 내리소서.
찬양대  : 희년을 향한 우리의 행진

말씀의 예전
인  도 1: 나는 듣나니, 주님께서 무슨 말씀 하셨는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 그것은 분명히 평화, 당신 백성과 당신을 따르는 자들, 또다시 망령된 데로 돌아가지 않으면 그들에게 주시는 평화로다.
인  도 2: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구약)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 빈정대기나 좋아하는 자들아! 이 백성을 예루살렘에서 다스리는 자들아! 너희가 자신만만하게 말하는구나. "우리는 죽음과 계약을 맺었다. 저승과 협정을 체결하였다. 부서뜨리는 채찍이 지나가도 우리에게는 미치지 못한다. 거짓말이 우리의 대피소요, 속임수가 우리의 은신처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보아라, 내가 시온에 주춧돌을 놓는다. 값진 돌을 모퉁이에 놓아 기초를 튼튼히 잡으리니 이 돌을 의지하는 자는 마음 든든하리라. 법이 나의 척도요, 정의가 나의 저울이다. 거짓말로 꾸민 너희 대피소는 우박에 맞아 부서지고 그 은신처는 물에 휩쓸려 간다. 죽음과 맺은 너희의 계약은 깨지고 저승과 체결한 협정은 효력을 잃는다. 부서뜨리는 채찍이 지나가는 날, 너희는 산산이 부서진다. 지나갈 적마다 너희를 부서뜨리는 채찍이 아침마다 지나간다. 밤낮으로 지나간다. 이렇게 무섭게 얻어맞기나 해야 그 속뜻을 깨달으려느냐? 침대는 짧아서 길게 눕지 못하고, 이불은 좁아서 몸을 덮지 못한다." 과연, 주님께서는 브라심산에서처럼 일어나신다. 기브온 골짜기에서처럼 떨치고 일어나신다. 너무나 기이한 당신의 일을 이루시려고 오신다. 너무나 신비로운 당신의 사업을 이루시려고 오신다. 그러니 이제 빈정대기를 그만두어라. 포승에 꽁꽁 묶이지 않으려거든 그만 빈정대어라. 온 세상을 멸하기로 결정하셨다는 말씀을 나는 들었다. 주, 만군의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나는 들었다. 예언자 이사야가 전한 말씀입니다.(이사야 28: 14~22, 공동번역)
(시편)
정의의 문을 열어라. 내가 들어 가 주님께 감사기도 드리리라. 이것이 주님의 문, 의인들이 이리로 들어가리라. 나의 기도 들으시고 나를 구해 주셨으니 주님께 감사기도 드립니다. 집짓는 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우리 눈에는 놀라운 일, 주님께서 하신 일이다. 이 날은 주님께서 내신 날, 다 함께 기뻐하며 즐거워하자. 주소서, 주님이시여, 구원을 주소서. 주소서, 주님이시여, 승리를 주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미 받으소서. 우리가 주님의 집에서 그대들을 축하하리라. 주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빛을 주신다. 나뭇가지 손에 들고 줄줄이 제단 돌며 춤을 추어라. "당신은 나의 하나님이시오니 당신께 감사기도 드립니다. 당신은 나의 하나님이시오니 당신을 기리옵니다." 나의 기도 들으시고 나를 구해 주셨사오니 주님께 감사기도 드립니다. 주님께 감사노래 불러라. 그는 어지시다. 그의 사랑 영원하시다.(시편 118:19~29, 공동번역)

(신약)
내가 끝으로 여러분에게 권고할 말은 이것입니다. 여러분은 주님과 함께 살면서 그분에게서 강한 힘을 받아 굳세게 되십시오. 속임수를 쓰는 악마에 대항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주시는 무기로 완전무장을 하십시오. 우리가 대항하여 싸워야 할 원수들은 인간이 아니라 권세와 세력의 악신들과 암흑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의 악령들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하나님의 무기로 완전무장을 하십시오. 그래야 악한 무리가 공격해 올 때에 그들을 대항하여 원수를 완전히 무찌르고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굳건히 서서 진리로 허리를 동이고 정의로 가슴에 무장을 하고 발에는 평화의 복음을 갖추어 신고 손에는 언제나 믿음의 방패를 잡고 있어야 합니다. 그 방패로 여러분은 악마가 쏘는 불화살을 막아 꺼 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구원의 투구를 받아쓰고 성령의 칼을 받아 쥐십시오. 성령의 칼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또한 언제나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청하십시오. 모든 경우에 성령의 도움을 받아 기도하십시오. 늘 깨어서 꾸준히 기도하며 모든 성도들을 위하여 간구하십시오. 서신서의 말씀입니다.

(복음서)
예수께서 올리브 산 내리막길에 이르렀을 때 수많은 제자들은 자기들이 본 모든 기적에 대하여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소리 높여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임금이여, 찬미 받으소서. 하늘에는 평화, 하나님께 영광!"그러자 군중 속에 끼어 있던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선생님, 제자들이 저러는데 왜 꾸짖지 않으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잘 들어라. 그들이 입을 다물면 돌들이 소리 지를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루가복음서 19: 37~42)

설교 _돌들이 소리 칠 것이다
       * 임명규 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회장,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
“돌들이 소리칠 것이다”

어두운 역사에 작은 빛 하나를 밝히기 위해 이곳에 모이신 여러분들 모두의 가정과 이 나라 이 민족 모두에게, 생명의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가 함께 하길 기원합니다.(사진 임명규 회장-사진제공 당당뉴스)
한 미 간에 쇠고기협상이 타결된 이후 우리 국민들은 이 쇠고기 협상의 문제점들을 발견하고, 우리의 밥상을 지키기 위해, 우리 아이들에게 안전한 먹을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재협상을 요구하며 촛불을 들기 시작했습니다. 하나의 주권국가로서는 너무도 당연한 권리인 검역주권을 확립하자고 작은 촛불을 밝혔습니다. 우리는 국민의 투표로 선출된 대통령이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여 잘못된 협상을 시인하고 재협상에 나서 주기를 기대하였고 마땅히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부도 실수할 수 있고 명백히 잘못된 것을 발견했을 때 시정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그 효과가 의심스러운 추가협상으로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었다며 쇠고기 수입 장관고시를 밀어붙였습니다. 그리고 국민과 소통하겠다던 대통령, 깊이 반성한다던 정부 여당의 태도는 쇠고기 수입 장관고시 이후 돌변했습니다. ‘국가정체성’ 운운하며, 촛불민심을 공권력으로 무참히 짓밟고 있습니다. 폭력사태에 직접적 책임이 없는 시민단체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주요 관계자들을 체포하는 등 공포분위기를 조성합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행태입니다. 스스로 국민들과 했던 약속을 뒤집고 상황에 따라 표변하는 정부를 믿고 따를 수 있는 국민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것은 사는 길이 아닙니다. 이것은 국민을 섬기는 길이 아닙니다.
진 정 아직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까? 그 작고 여린 촛불이 왜 오늘 이렇게까지 커져 왔는지? 왜 어린이들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온 국민들이 분노하는지? 왜 불과 수개월 전에 그렇게 많은 국민적 기대를 안고 출범한 대통령과 정부에 대해 그토록 불신이 깊어 가는지 정녕 아직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까?
과거 군부독재 시절에 경험했던 것 같은 공안정국이 조성되는 현실 속에서 우리 기독교인들은 더 이상 침묵할 수 없어 촛불을 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권력자들은 예수를 환영하는 백성들의 입을 막으려고 했습니다만, 예수께서는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를 따르는 우리 기독교인들도 이런 심정으로 촛불을 밝히는 것입니다.연일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공권력으로 국민의 정당한 요구를 봉쇄하려 한다면 대통령과 정부는 더 큰 저항에 부닥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제 나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안타까운 심정으로 간곡하게 권고합니다.
국민의 뜻에 복종하십시오. 촛불을 든 민심을 천심으로 받아들이십시오. 대통령이 나서 국민 앞에 진정으로 사과하고 잡아간 이들을 모두 석방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폭력진압에 책임 있는 사람들을 엄하게 징계해야 합니다. 그것이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고 대통령이 사는 길이며 국민이 사는 길입니다. 그 길만이 정부도 살고 나라도 사는 길입니다.
이미 늦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국민들의 인내심이 남아있을 때에, 용서할 수 있을 때에 국민들과 소통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돌들이 소리 지르는” 날이 올 것입니다.
나 는 또한 이 자리를 빌려 일부 빗나간 행태를 보이는 기독교인들에게 당부하고자 합니다. 대통령이 교회의 장로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그의 정책을 옹호하려 드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낡은 시대의 잣대로 촛불을 폄하하고 이념적 대결을 부추김으로서 평화를 파괴하는 일에 가담하는 것은 신앙인으로서 심히 부끄러운 일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오직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성서가 가르치는 진리가 무엇인지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국민과 함께 아파하고 자라나는 젊은 세대와 함께 호흡해야 합니다. 나는 우리 한국교회가 어지럽고 혼란한 시대 속에서 하늘의 빛을 비추어, 진실과 정의를 위해 노력하는 모든 이들의 참된 벗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곳에 모인 기독교인 여러분들과 시민들에게 당부 드립니다.
우 리가 촛불을 든 이유를 잊지 맙시다. 우리가 촛불을 든 이유는 단순히 경찰들과 싸우기 위한 것도, 대통령을 끌어내리려 함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먹을거리를 우리의 밥상에 올리자는 것이요, 주권국가로서 나라의 자존심을 지키자는 것입니다. 나아가서는 약자를 배려하는 사회,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이 꿈을 갖고 살만한 세상, 생명과 환경을 소중히 여기는 나라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주장이 폭 넓은 지지와 정당성을 얻으려면 우리는 스스로 끝까지 비폭력과 평화의 원칙을 지켜 나가야 합니다. 비폭력이 더 어렵고 힘겨운 싸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칼로 선 자는 칼로 망한다” 고 말씀하십니다. 힘들고 어려운 싸움이라 할지라도 비폭력을 이길 폭력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끝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평화의 촛불을 밝혀나가야 할 것입니다.
오 늘 우리가 밝힌 촛불은 이 땅의 민주주의가 승리할 때까지 꺼지지 않을 것입니다. 국민의 주권이 확실하게 설 때까지 더욱 더 큰 빛을 발할 것입니다. 국민들의 가슴마다에 밝혀진 촛불은 어떠한 폭풍우가 몰아쳐도 결코 꺼지지 않습니다. 용기를 가지십시오, 힘을 내십시오. 국민들의 순수한 촛불을 왜곡하는 일부 보수 언론들과 여러분을 폭도로 몰아가는 어둠의 세력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빛이요 생명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또한 건강한 상식과 양심을 가진 수많은 교회와 기독교인들도 끝까지 여러분과 함께 할 것입니다. 진리가 승리하는 그 날, 빛이 어둠을 이기는 그 날까지 우리 함께 서로의 손을 맞잡고 이 행진을 멈추지 말고 이어갑시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들과 마음으로 함께하는 모든 분들께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2008. 7. 3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회장 임 명 규

인  도 1; 당신을 경외하는 자에게는 구원이 정녕 가까우니 그의 영광이 우리 땅에 깃드시리라. 사랑과 진실이 눈을 맞추고 정의와 평화가 입을 맞추리라.
인  도 2: 함께 노래합시다. 복음은 진리의 승리를 보여줍니다. 대한민국의 진리는 헌법 1조입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그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노래 _대한민국 헌법 1조

인  도 1: 땅에서는 진실이 돋아 나오고 하늘에선 정의가 굽어보리라.
인  도 2: 진리와 정의의 승리를 확신하며 드리는 찬송입니다.
노래 _뜻 없이 무릎 꿇는 그 복종 아니요

인  도 2: 시국 기도회에 임하는 우리의 입장입니다.
인  도 1: 주님께서 복을 내리시리니 우리 땅이 열매를 맺어 주리라. 
인  도 2: 임을 향한 행진곡으로 파송의 노래를 함께 부릅시다. 
노래 _임을 향한 행진곡

인  도 1: 정의가 당신 앞을 걸어 나가고, 평화가 그 발자취를 따라 가리라.
인  도 2: 여러분 모두가 건강한 기쁨과 따듯한 일상으로 행복하기를 바라며 드리는 기도입니다.

축복기도, 아론의 기도, 민수기 6.24~26)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복을 주시고, 여러분을 지켜주시며, 주님께서 여러분을 밝은 얼굴로 대하시고, 여러분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님께서 여러분을 고이 보시어, 여러분에게 평화 주시기를 빕니다.

by 책벌레 | 2008/07/05 02:42 | 신앙일기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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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벌레 | 2008/07/04 21:41 | 세상읽기 그리고 개인일기 | 트랙백 | 덧글(2)

민족교회를 보편교회로 성숙시키다._사도 바울이야기

http://www.kukinews.com/mission/article/view.asp?page=1&gCode=all&arcid=0918563484&code=23111411
[역사를 바꾼 크리스천] 사도 바울… 율법 초월 ‘만인의 기독교’ 정립
국민일보 2002.05.03
“대머리와 휜 다리에 눈썹은 서로 맞닿고 코는 매부리코에 단신의 다부진 체구를 가진 호감에 찬 사나이.그는 인간의 모습에 천사의 얼굴을 가진 자이다”
이 글은 2세기 문헌인 ‘바울과 테클라 행전’에 나오는 바울의 외모에 관한 서술이다.이 서술은 다혈질적이고 고집스러우면서도 생의 낙관적 의지로 충일해 있는 서신들에 나타나는 바울의 인간적 면모와 일치한다.
바울의 생애를 결정적으로 규정한 것은 단연 다메섹에서의 회심사건이었다.바울은 소아시아 길리기아의 다소 출신으로서 독실한 유대교인이었다.그는 자기 종교에 대한 회의로 인해 반성적으로 사유한 끝에 기독교로 개종한 것이 아니다.그는 모세와 율법을 무시하는 것으로 보였던 기독교를 박해하기까지 했다.
그러던 그가 예기치 못한 다마스쿠스에서의 체험으로 인해 기독교로 개종하게 되고 예수를 박해하는 자에서 예수를 선포하는 자로 180도 전환하게 된다.이제까지 유대교를 향해 쏟아부었던 단순하고도 열렬한 헌신의 방향이 이제 기독교로 바뀌게 된다.이 점에서 근본적으로 바울은 신비스러운 종교적,영적 체험에 열려져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바울은 이 체험의 열광적이고 신비스러운 측면에 휩싸이기보다는 그것을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언어로 말한다.다메스쿠스에서의 극적인 회심 체험은 바울 자신에 의해 이방 사도로의 소명 체험으로 이해된다.그리고 이러한 이방 사도로서의 소명 체험은 이후 바울의 선교와 신학의 토대가 된다.그는 주로 시리아와 소아시아,유럽의 헬레니즘적 대도시에서 선교활동을 벌인다.그의 선교활동은 점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고 불가피하게 율법문제로 인해 유대교와 대결하게 된다.
바울 당시 예루살렘교회는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유대교내의 소종파로 머물러 있었다.메시아 신앙은 본래 유대교 안에 있던 것이고, 예수 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자칭 타칭 메시아로 등장했었다.예수도 그중 하나로 이해될 수 있었고 따라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것 정도는 당시 유대교에서 용인할 수 있었다.
오히려 유대교적 정체성의 핵심을 이루는 것은 율법과 관련된 부분이었다.바울은 이방 선교 과정에서 할례와 관련하여 율법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당시 예루살렘교회는 아직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과 유대교인이 된다는 것의 차이를 명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고 그것은 율법 문제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그들은 기독교로 개종하고자 하는 자에게 율법을 지킬 것을 요구했고 거기에는 당연히 할례도 포함되었다.바울은 이를 거부하고 구원에서 율법의 기능을 부정한다.그리고 여기서부터 바울의 인의론(認義論)이 전개된다.
바울은 늘 구체적인 목회현장에서 출발하여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사유로 넘어간다.바울 서신들은 구체적인 목회적 돌봄의 과정에서 나왔으면서도 보편적인 신학적 사유로 넘어가는 단초들을 포함하고 있다.인의론 외에도 고린도교회 적대자들과의 논쟁은 십자가의 신학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바울은 부족종교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던 당시 종교들 가운데서 인종과 성,계급,지식 등 모든 인간적 차별의 한계를 넘어서는 보편종교의 가능성을 열어보였다.인의론은 구원사건에서 율법의 효력을 정지시킨다.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내세울 수 있는 모든 것을 효력정지시킨다.하나님 앞에 인간은 빈 손으로,맨 몸으로 서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 사회에서 차별을 야기시키는 모든 특권이 하느님 앞에서 무효가 된다.아마도 바울의 이 선언은 당시 대중에게 커다란 해방감을 가져다주었을 것이다.구체적으로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한 것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하나됨이었지만 이념적으로 그것은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보편종교를 탄생시키는 데로 이끌었다.실로 당시 사회에서 그런 종교는 기독교밖에 없었고 그랬기 때문에 기독교는 수많은 다른 종교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초대 기독교가 대중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러한 평등의 메시지와 실제 삶에서 가졌던 구호와 협동의 조직 때문이었고 이 메시지와 관행을 실천한 사람이 바울이다.
바울은 로마제국에 의해 반란범으로 지목됐던 사람의 종교를 바로 그 로마제국의 종교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었고 그가 죽은 후 그 꿈은 실제로 이루어졌다.바울은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 중 하나이지만 또한 바울만큼 엇갈리는 평가를 받은 사람도 없다.그는 기독교 신학의 기초를 놓은 신학의 아버지로 평가받는가 하면 급진적인 예수의 선포를 보수화한 인물로 지탄받기도 한다.그는 자주 반민중적 반여성적 인물로 낙인찍혔다.
그러나 바울은 급진적인 예수의 복음을 예수가 죽은 뒤 생겨났던 교회의 상황 속에서 꽃피우려 했던 사람이고 그러한 한계 안에서 그의 작업을 평가해야 할 것이다.바울이 예수가 아니라고 비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바울에 대한 평가는 바울이 예수와 다른 점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예수의 선교상황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헬레니즘적 도시교회의 상황 속에서 바울이 얼마나 진지하게 예수의 해방 소식을 관철시켜냈는가를 평가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그리하여 그의 성공뿐만 아니라 실패에서도 배울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박경미 (이화여대교수·기독교학과)

by 책벌레 | 2008/07/04 20:48 | 성서이야기 | 트랙백

기독교사회주의자 토마스 무어이야기

이번주일의 수호성인이 바로 토마스 무어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사회주의자이자 성인인 토마스 무어에 대한 글을 발췌해보았습니다. 물론 사도신경의 고백에  근거, 거룩한 보편교회와 성도의 상통(Communion)을 믿는 우리 성공회 교리에 따라 이번주 주일학교 미사때 어린이들에게 토마스 무어에 대해 설명해줄 생각입니다.
[역사를 바꾼 크리스천] 토마스 무어… 평등한 신앙공동체를 꿈꾼다
국민일보 2002.07.04
신은 존재하는가?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차별은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인가? 행복한 인간, 행복한 사회는 과연 가능한가?
인간에게 희망이라는 이름의 ‘유토피아’를 선물한 토머스 모어는 1478년 런던의 법률가 존 모어의 아들로 태어났다.켄터베리의 대주교였던 존 모턴과 고대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중세의 르네상스 운동으로부터 많은 사상적 영향을 받았던 모어 사상의 핵심은 기독교적인 휴머니즘이다.그는 신앙과 양심을 생명처럼 소중하게 여긴 경건한 기독교인으로서 보편적인 가치와 이념을 통해 개인과 사회가 행복하게 조화를 이루는 꿈을 유토피아 사상으로 구체화하였다.그는 현실속에서도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하는 인문주의자로서 인간의 도덕성과 자연을 조화시킨 행복한 삶과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희망을 이루기 위해 힘썼다.
그의 사상이 집약된 ‘유토피아’는 산업자본주의가 태동되던 초기 자본주의 시대를 배경으로 1516년에 쓰여졌다.당시의 귀족들에게는 인권보다는 돈과 사회적인 부가 더 중요했다.자본가들은 더 많은 부를 축적하기 위하여 노동자들을 철저하게 착취했다.그러나 노동자들에게는 이런 착취에 대항할 수 있는 수단이 전혀 없었다.모어는 인간에게 인간이 착취당하는 현실을 비판하면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대안 찾기를 시도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는 사람들은 ‘아직 도달되지 않은,그러나 언젠가는 도달하게 될’ 더 나은 세계를 꿈꾼다.꿈이 없는 사람과 사회는 미래가 없는 사람과 사회이다.인간이 더 나은 세계를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바로 꿈이 있고 그 꿈을 실현하려는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꿈은 바로 현실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이다.사람은 꿈꾸는 대로 행동하고 그 꿈을 목표로 현실의 자기를 변화시켜가는 존재이다.그렇기 때문에 꿈,즉 희망은 현실의 변화를 촉진시키는 가장 현실적인 이념이라고 할 수 있다.모어가 가졌던 희망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그리스어 ou(no)와 topos(place)의 합성어로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곳’,즉 이상향을 가리키는 유토피아(Utopia)라는 말은 영원히 계속될 미래에 대한 인간의 무한한 꿈을 잘 드러낸다. 아직 실현되지 않은,그러나 언젠가는 우리가 반드시 이루어야 할 사회,그리고 이룩될 수 있는 유토피아는 우리들의 도덕적 양심이 회복되고 공동체에 대한 의식이 확보되며 옳음과 그름을 분별할 수 있는 사회적 양식을 통하여 비로소 구현되는,합리적이고 도덕적인 사회이다. 모어는 사유재산제 폐지야말로 모든 불합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획기적인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모든 불행의 원인이 바로 더 많이 가지려는 욕심과 이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사유재산제도와 사유재산으로 인해 형성되는 계급 때문이라는 것이다.그에 대한 대안으로 모어는 가족공동체적인 원시 기독교적 사회를 제시한다.모든 국민의 경제적인 평등과 재화의 공동분배,계급없는 사회를 기독교 공동체의 이상적인 사회 상태로 받아들인다.
도덕적 사회를 구축하기 위해서 모어는 종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종교의 원래 의미는 인간의 삶에 자유와 행복을 안겨주는 것이다.이념과 현실,이론과 행위가 일치할 때 현실 생활에서 종교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모어는 ‘유토피아’에서 기독교가 인간의 가치를 가장 존중하는 이상적인 종교임을 강조한다.그 이유는 유토피아인들의 신념체계와 기독교의 사회사상이 내용적으로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유토피아의 사람들은 내세에 대한 투철한 신앙관과 내세와 연결되는 현실적 삶의 방식을 분리하지 않는다.예배를 드리기 전에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화해한 후에 예배에 참석해야 한다는 주장,즉 사람 사이의 화해와 용서에 대한 강조는 신앙생활이 내세에 대한 이념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현실적인 삶속에서 실현되어야 하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현실의 삶을 규정하는 원리는 내세에 대한 신앙이다.인간의 삶은 내세적 세계관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그 이유는 내세가 없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규제할 수 있는 기준이 상실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윤리적인 삶의 기준 역시 상실되기 때문이다. 모어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신앙의 자유를 인정해야 한다.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자신의 종교에 충실하는 것이 이상적이며 어떠한 경우에도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가 믿는 종교를 강요할 수는 없다.종교분쟁이 기존의 사회질서를 파괴할 뿐만 아니라 행복해야 할 종교인들의 삶을 파괴시키는 이유는 바로 종교가 갖는 이러한 강제성과 독단성 때문이다.그리고 종교의 자유를 보장해도 좋은 이유는 종교 자체 속에는 이미 진리가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진리는 숨겨지지 않고 결국에는 드러나게 되어 있다.따라서 인간이 당면한 문제들에 대하여 맹목적인 신앙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이성으로 냉정하게 판단하는 한 진리는 그 자체가 갖는 힘으로써 사람들을 감동시키게 된다. 모어의 유토피아적인 이념은 사상적으로는 캄파넬라와 베이컨, 그리고 마르크스와 그 이후의 유토피아를 꿈꾸는 많은 사상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자신의 신앙과 기독교 사회주의 신념에 따라 영국 종교개혁에 반대한 대가로 단두대에서 처형당하였던 그에게 1935년 로마 교황이 성인의 칭호를 부여한 것은 그의 신앙심과 박애정신이 서민들의 아픔과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노력의 결과임을 가톨릭교회가 공식적으로 승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김용일 <계명대 교수>

by 책벌레 | 2008/07/04 20:42 | 신앙일기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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